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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년 낭독문
그리스도를 알려 하여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 3:7~1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저자 소개:엘렌 G. 화잇 엘렌 G. 화잇(1827~1915)은 계시와 영감의 저술가이며, 그의 저작물은 140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어 세계 각처에 널리 전파되었다. 그가 남긴 신앙, 건강, 교육, 가정 문제 등에 관한 다양하고 폭넓은 육필 원고는 10만 쪽이 넘는다. 성령의 지도를 받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신앙의 기초인 성경으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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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일 월요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품성을 드러내시고 타락한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이 세상의 구주는 하나님과 동등하시다. 그의 권세는 하나님의 권세와 동일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분리되어 존재하신 일이 없다고 선언하셨다. 그의 말씀의 권세와 이적들을 행하신 권세는 분명히 그의 것이었으나 그는 자기와 아버지는 하나이심을 우리에게 확언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부조들과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알리셨다. 구약의 계시는 명확하게 복음을 펼쳐 놓았으며 무한하신 아버지의 목적과 뜻을 나타내었다. 구약의 거룩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다. 그가 세상에 오셨을 때에 그의 오심에는 죄에서의 구속과 또한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인류를 회복시키는 동일한 기별을 지니고 있었다.1
사상이 언어로 드러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아버지 하나님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 보이신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시고 그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말과 품성과 권세와 위엄 가운데서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나타내셨다.2
입법자로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권세를 행사하셨다. 그의 명령과 결정들은 영원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최고 통치권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 아들 속에서 나타난 바 되셨다. 그는 하나님과 그처럼 완전히 연결되고 또한 보좌를 둘러싼 빛을 온전히 두룬 바 되셨으므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그분의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며,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으며,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 14:11; 마 11:27; 요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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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일 화요일
가정의 그리스도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요 2:1, 2).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잔치에 참석하여 그 잔치에 참석한 자들과 어울리시며 그들의 결혼을 인정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기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을 금하시거나 가정 안에 존재하는 관계와 그 감화력을 깨뜨려 없애거나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상에 있는 가정이 하늘 가정의 상징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순결한 애정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감화를 회복시키고 향상시키며 또한 정결하고 고상하게 만들고자 오셨다.…
어머니들은 하늘 천사들의 부드러운 보호 아래 놓여 있다.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문을 주 예수께서는 매우 깊은 관심을 지니고 두드리신다. 그분은 아주 친절하게 어머니들의 관심을 지켜보실 뿐 아니라 자녀들이 등한히 취급받는 모습을 보실 때에 큰 슬픔을 느끼신다. …품성은 가정에서 훈련된다. 인간은 거기에서 저주가 되거나 축복이 될 품성을 꼴 짓고 형성한다. 연약하고 무력한 상태 가운데서 가정의 새 식구가 이 세상에 나올 때에 주께서는 그 아이를 어머니에게 위탁하셨다.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사랑을 지니신 그분께서는 영원한 운명을 잉태하는 이런 엄중한 직분을 사업적 계획과 염려로 가득 찬 아버지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만일 여인이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기만 한다면 그의 심령은 인내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된다. 그는 자기에게 위탁된 귀중한 영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라나도록 훈련시키는 일에 하나님과 그의 남편과 더불어 협력해야 한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하면서 ‘가정의 띠(house-band)’라는 의미를 지닌 ‘남편(husband)’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거룩한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성격 형성기에 있는 영아기와 유년기에 의에 대한 확고한 인상을 심기를 원하신다. 하늘의 왕자와 세상의 왕자 사이의 전쟁은 끊임없이 진행 중에 있다. 어머니들에게는 자기 자녀의 품성을 꼴 짓고 형성할 동역자로 누구를 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주어질 것이다. 어머니들이 자녀의 영혼을 위해 사랑이 해법임을 배운다면,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가정, 하늘의 빛이 가득 찬 가정이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1 ===============================================================================
2010년 2월 3일 수요일
어린아이들을 사랑하는 자 “그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마 19:13~15). 어린아이들은 주님의 유산이다.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 자기를 믿는 작고 어린 영혼들은 보좌 주위에 두른 천사들처럼 귀하다. 그들은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훈련받아야 한다. 그들은 순종의 길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며 식욕이나 허영 가운데 빠져서는 안 된다.
어린아이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는 어머니들을 제자들이 돌려보내고자 애썼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편협한 믿음을 꾸짖으셨다. 어머니들이 저들의 자녀들을 예수께 데려온다고 제자들이 책망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마음 아파하셨으며, 또 그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의 은혜를 제한시키면서 말과 행동으로 어린아이들을 당신께 가까이 못 오게 하는 것을 보시고 서글퍼하셨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꼴 짓는 교육과 훈련을 아주 어린 시절에 받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주어진 책임은 엄청난 것이다. 자녀들의 마음에 선한 씨를 부지런히 그리고 끈기 있게 심어야 하며, 또한 그들의 마음에 옳은 습관과 진실함과 자원하는 순종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씨를 충분히 뿌리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청년 시절에 형성된 올바르고 덕성 있는 습관은 일반적으로 그의 일생의 방향을 특징짓게 한다.…
부모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될 것 같으면, 그들의 삶은 선한 감화로 향기가 넘치게 될 것이며 거룩한 분위기가 그들의 영혼을 두르게 될 것이다. 성령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구하는 열렬한 간구는 하늘에 상달될 것이며, 밝고 따뜻한 태양 빛이 온 땅을 휘감듯 경건한 믿음이 그들의 가정에 확산될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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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4일 목요일
소년?소녀를 위한 기별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시 34:11).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은 마음에 다음과 같이 새겨야 한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존재이다. 나는 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구주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의 덕을 실천할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라. 일하는 동안에도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게 하라. 그대의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하나님께 위탁한 후에 나아가 그대가 드린 기도와 정반대로 행동하지 말라. 그대가 시험에 넘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동시에 주의하라. 악을 행하고자 하는 첫 이끌림을 물리치라. 그대의 마음에 “예수님, 나를 도우시어 악에서 지키소서.”라고 기도하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그대가 행하기를 기뻐하실 일을 하라.…
많은 사람이 질문하는 것처럼 그대도 ‘예수께서 나를 받으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의 감정으로 알 것인가?’라고 질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니다. 그의 거룩한 말씀은 순종함으로써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을 그대 자신의 것으로 삼으라. 예수께서 그대의 마음에 거하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신뢰하라. 믿음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대는 그분의 화평을 누릴 수 있으며 “내가 믿는 자를 앎으로 성령의 모든 속삭임을 들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승리하는 데는 단 한길뿐이다.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마음을 다하여 그를 섬기라. 그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그대에게 어떤 분임을 알고 있다면 날마다 그분을 찾으라. 아무도 보는 눈이 없더라도 주님께서 그대의 행위를 심판하실 것이므로 작은 일에 충실하라.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대는 날마다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그대의 영혼에 진리의 원칙을 확고히 심고 그대의 성품 가운데 그리스도를 드러내라. 평범하고 낮은 수준에 만족하지 말라. 그대는…품성 가운데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다.…
주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이 걷는 좁은 길에서 한 걸음씩 전진하려면 마음속에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오 하나님, 내가 주를 찾으며, 내가 주를 따르며, 내가 주를 섬기며, 주의 인도하심 아래 내가 전진하리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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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5일 금요일
어린 선교사의 군대 “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잠 20:11).
하나님께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주의 군대에 가입하기를 원하신다. …어린이도 나이 많은 군인들이나 다름없이 좌우로 세찬 시험들을 만난다. 사탄과 그의 군대는 젊은이를 유혹하기 위하여 모든 속임수를 동원할 것이다. 어린이들이 주님의 군대에 가입하여 다른 이들도 그 대열에 참가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어린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유혹에 저항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자녀들을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말로 가르치고 그들이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는 대로 그들의 마음을 예수께 향하게 하라. 그들에게 자제심을 가르치라. 그들이 어릴 때에 극복하는 노력을 시작하도록 가르치라. 그러면 그들은 부모의 기도 어린 노력과 연결되어 그리스도께서 주실 수 있고 또한 주실 그 귀중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통하여 그들이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자가 되고자 투쟁할 때에 용기 주는 말로 그들을 응원하라.…
부모들은 저들의 기억 속에 그리스도의 귀중한 말씀을 걸어 두어야 한다. 자녀들은 종종 부모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들 곧 그리스도, 믿음, 진리 등에 대하여 들은 말들을 반복할 것이다. 고귀한 진리가 자녀들을 통해 전해질 수 있다. 자녀들의 군대는 그들이 비록 어리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선교사로 모일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어린아이의 욕구를 결코 물리치지 말라.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님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심을 꺼 버리지 말라. 적절하게 교육받은 어린이는 예수님을 사랑하도록 배우고 저들이 지은 죄로 구주를 슬프게 한다고 생각하며 애통해할 것이다. 그대의 말과 모본을 통하여 저들의 양심을 부드럽고 민감하게 지키도록 하라.1
하나님의 천사는 항상 그대의 어린 자녀들 곁에 있다. …사랑과 친절, 인내와 자제력이 항상 그대 언어의 원칙이 되게 하라. 마음을 얻는 사랑은 깊은 물과 같이 그대의 자녀를 늘 인도하며 흐를 것이다. 전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어린이에게 사랑과 친절의 행동을 취하셨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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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6일 안식일
가난한 자를 위한 선교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눅 4:18). 인간의 고통은 늘 그리스도의 마음을 움직여 동정과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심령이나 육체에 괴로움을 겪는 자들을 동정하시고 민망히 여기셨다. 고통 당하고 고생을 겪는 이들을 대하시는 그리스도의 모본은 그분의 피조물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동정하고 가엽게 여겨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육체 가운데 고통을 당하셨다. …그는 굶주림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것인지 알고 계시므로 주린 자를 먹이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다. 또한 우리가 가난한 자에게 봉사하는 일이 그리스도 자신에게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마 25:35)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목마름의 괴로움과 고통을 아셨으므로 그의 제자 중 아무에게 그의 이름으로 냉수 한 잔 준 것도 그 상을 잊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하셨다.1
그리스도는 활동적이고 꾸준한 봉사자셨다. 그분께서는 신앙의 영역이 일상의 문제와 동떨어져 높고 가파른 분리의 벽으로 가로막힌 모습을 보셨다. 그분은 분리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주님이 필요한 모든 이를 돕는 능력을 행사하셨다. 그분은 낙담한 이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선사하셨다. …그분은 믿는 바가 무엇이냐고 묻지도, 어느 교회에 소속되어 있느냐고 묻지 않으셨다. 그분의 삶은 활동적이고 열렬하며 사랑 가득한 관심으로 특징지어진다.…
주님께서는 빈핍함의 의미를 아신다. 그는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스러운 자에게 위대한 선교사였다. 그는 하늘의 왕으로서 부유한 삶을 누리고 가장 부요한 가운데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가난을 선택하셨다. 그는 자기를 믿는 가난한 자를 높이셨는데 이는 그가 영원히 그들을 축복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가난하게 되는 것은 최고로 부요하게 되는 일이다. 이런 가난함은 성화되고 축복을 누린다.…
그리스도의 인성 가운데는 무한한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영혼에, 믿고 신뢰하는 가난한 이들을 묶어 주는 황금 실이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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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7일 일요일
모본이 되는 인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이 세상은 하늘의 왕이신 성자 하나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과 본성과 품성의 대표자로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그는 왕복과 왕관을 벗으시고 종의 자리를 취하시기 위하여 그 높은 권좌에서 내려오셨다. 그는 부요하셨으나 우리가 영원한 부(富)를 얻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 그는 세상을 창조하셨으나 봉사 기간 동안에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부르짖을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비우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입고 인류의 선두에 서셨다. 그의 태도는 동정과 사랑이 충만하셨기에 가장 가난한 자라 할지라도 그에게 나오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였으며 가장 비천한 이들도 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집집을 두루 다니며 병자를 고치시고 주린 자를 먹이시며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고 고난 받은 자를 어루만지시며 낙담한 자에게 평화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는 어린아이들을 팔에 안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셨으며 피곤한 어머니들에게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셨다. 다함없는 자비와 친절로 그는 인간의 모든 비애와 고난을 직면하셨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요 남을 위하여 일하셨다. 그는 기꺼이 자신을 겸비케 하고 자기를 부인하셨다. 그는 자신을 남과 구별하고자 노력하지 않으셨다. 그는 모든 사람의 종이었다. 날마다 만나는 슬프고 무거운 짐 진 이들을 돌보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것으로 음식을 삼으셨다.
그리스도는 후대에 따른 모든 이의 모본이 되는 위대한 의료 선교사의 표본으로 우리 앞에 서셨다. 그분의 순결하고 거룩한 사랑은 그분의 영향 아래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축복이 된다. 그리스도의 품성은 죄의 조그마한 오점도 없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품성이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표현하러 오셨다. 그분은 억압하고 심판하고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연약하고 결함 있는 성품을 치료하여 사탄의 권세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창조주요 구속주이시며 인류의 부양자이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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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8일 월요일
친절과 사랑과 동정심이 많으심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 86: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슬픔이 이를 때에 봉사의 법에 따라 친절과 사랑 가운데서 서로 위로하라고 명하셨다. 아무도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며 아무도 자신을 위하여 죽지 아니한다. 생명과 사망은 모든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고상하고 자비로우며 긍휼이 넘치는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당신의 품성을 나눠 주며 그의 은혜와 지혜와 자비를 증거 하도록 그의 인간 대리자들에게 의무를 부여해 주셨다. …예수님은…늘 인간의 고통을 아시므로 우리도 그와 같이 되기 위하여 우리 마음을 그의 성령으로 부드럽게 하고 굴복해야 한다.…
우리의 사업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인간 안에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죽어 가는 영혼을 찾아내어 그리스도의 동정심을 베풀어야 한다. 단 한 명의 영혼도 그분의 오래 참으심과 동정 넘치는 자비를 보지 못하여 무시당하고 버려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관대하심을 배우기를 요청한다. 우리는 그분의 품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하늘 아버지를 더욱 깊이 알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분의 은혜와 임재를 통해 몇 시간 동안만 우리를 소생시키셨다가 다시 돌려보낸 후, 그의 빛을 떠나 슬픔과 어둠 속을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 그는 우리가 그와 같이 거해야 하며 그 또한 우리와 같이 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의 사업이 진행되는 곳마다 그의 임재는 자비와 사랑과 동정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는 그대와 나를 위하여 당신 안에 거할 곳을 준비하셨다. 그는 우리의 피난처이다. 우리의 경험은 확장되고 깊어져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랑의 충만함을 모두에게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고전 3:9 참조)이라고 선언하셨다. “내 안에 거하라”(요 15:4). 그리고 “나의 멍에를 메”(마 11:29)라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멍에를 지겠는가? 약속의 말씀은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완전한 쉼을 얻을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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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9일 화요일
우리도 공유할 수 있는 속성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 자비는 인간 대리자가 하나님과 협력함으로써 그와 더불어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는 속성이다. 자비는 친절하고 동정적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생애를 이기심으로부터 깨끗이 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며 마음을 아름답게 한다.…
천군천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의 일부분으로 그것은 그 사랑의 신성에 있어서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이다.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유일한 것으로 그것은 곧 자비에서 난 사랑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전적으로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자비란 그 자비를 받는 대상의 불완전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자비가 실제로 나타나게 되었다. 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아니요 그의 증오의 대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죄인을 동정하신다. 이는 죄인이 창조주의 형상을 지녔으며 능히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신의 공로가 아니요, 죄인을 대신하여 구주께서 행하신 위대한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공로로 말미암는 것이다.…
투쟁하고 있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나 죄의 결과로부터 회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 의존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어떤 점이 나으면 거의 틀림없이 다른 점에서는 그보다 못하다. 이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은 시험을 받는 존재이다. 그리고 모두는 인간의 감화와 동정이 필요하다. …자비를 나타냄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이 자비를 펼치실 자리에 이끄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속성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언제나 죄인을 향하여 펼쳐져 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범죄 한 인간 자신이 회개하는 죄인을 용서하며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는 말씀은 우리의 의무를 너무나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비로울 수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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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0일 수요일
동정심이 넘친 치료자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마 14:14).
보배로우신 구주 예수께서는 죄로 병든 영혼의 끈질긴 요구와 또 각종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하여 결코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신 것 같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불쌍히 여기사”(막 6:34). 이것은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의 관심을 그들의 관심과 일치시켰다. 그는 저들의 짐을 나눠 지셨다. 그는 저들의 두려움을 같이 느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열렬한 동정심을 지님으로 자신의 마음에 아픔을 느끼셨다.
그 사랑은 참으로 비길 데 없는 사랑이 아닌가! 그는 인간의 모든 경험을 나누기 위하여 인성을 쓰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그는 모든 점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으되 여전히 죄는 없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이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으셨다. 인간은 값싸고 하찮은 물건같이 천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예수님의 지대하신 사랑의 대상물이다.
구속(救贖), 그 얼마나 포괄적인 말인가! 구원받기 원하는 모든 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속된 것과 세속적인 것에서 구속받아 향상되고 성화되어 구원의 큰 사업에서 하나님과 능히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인간의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하시어 하나님의 섭리와 성품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단 한 푼도 지불할 돈이 없으셨지만, 조금이라도 얻으려고 기적을 행치 않으셨다.
보배로우신 구주 예수께서는 집이 없었고 자주 굶주리셨다. 그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는 때때로 지치셨다. 인간이 이를 수 있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 주기 위하여 예수께서 인성을 쓰셨으므로 인간이 귀한 존재가 된다. …그는 생명과 불멸의 빛을 가지고 오사 평범하고 하잘것없는 생의 노력을 밝히시고 만족시키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품성이 우리 속에 나타나는지 보기 위하여 허리를 굽혀 우리의 품성을 살피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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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1일 목요일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시는 분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마 8:17).
그리스도만이 많은 사람의 고난을 짊어질 수 있었다. “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사 63:9) 자신의 육체 가운데는 아무 병(病)도 없었으나 그는 남의 병을 짊어지셨다. 그는 가장 자비로운 동정심으로 자기 주위로 모여드는 고통 당하는 자들을 바라보셨다. 그들의 모든 비애 가운데 사탄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보셨을 때에 그의 마음은 쓰라렸으며 도움이 필요하거나 애석한 사건 모두를 자신의 처지로 여기셨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그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어떠한 번민도 그를 압도하지 못하였다. 결코 움츠러들지 않는 권능을 지니시고 그는 마음과 육체를 사로잡는 악한 영들을 내쫓으실 때에 고통을 당하는 자들의 그 아픔을 예수님은 온몸으로 함께 느꼈다. 사랑의 권능이 그의 모든 치료 중에 임했다. 그는 고통을 당하는 인류와 관심을 함께 나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건강하고 능력이 있었으므로 고통 당하는 자들이 그의 앞에 나올 때에는 질병은 언제나 저지당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즉시 나사로에게 가지 않으셨다. 그가 나사로의 고통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병을 낫도록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질병과 사망을 목격하려면 반드시 사탄의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사로의 부활을 통하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최종적이고도 더할 나위 없는 증거를 유대인들에게 보이기 위해 나사로의 죽음이 허락되었다. 악한 권세와의 이런 투쟁에는 모두 그리스도께서 몸소 들어가셔야 할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었다. 그분 앞에는 늘 영혼들의 속전을 지불하는 방법이 놓여 있었다. …그가 나사로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켰을 때에 그는 그 생명을 위하여 자신이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값을 지불해야 할 것을 아셨다. 모든 구원은 그분의 처절한 굴욕에 기인한 것이었다. …고통 당하는 무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보냄 받으셨는데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마 12:15)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게 주님은 인간 자녀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셨다. 그의 기적은 사명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아시고 “나았으니”(요 5:14)라고 하시며 아픈 자들을 치료하실 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하셨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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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2일 금요일
하늘의 보화를 나누어 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 복되신 구주께서는 율법의 교훈을 따라 사는 모본을 우리에게 세워 주셨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늘의 부요한 보화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하며 이 부요한 보화들을 남에게 나누기 위해서도 우리의 마음이 열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끊임없이 통하는 수로(水路)가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혜로운 영을 우리의 형제들과 이 세상에 전달하시는 통로가 된다.…
우리가 자신의 구원에 대한 명백하고 확실한 보증을 얻게 되면 기쁨과 즐거움이 드러날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가 다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부드럽고도 복종시키는 감화가 실생활에 옮겨질 때에 우리 마음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를 풍기게 된다. 그러나 만일 가혹하고 비난하는 정신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을 진리에서 떠나게 하여 사탄의 반열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엄숙한 생각인가! 시험당하는 자들을 인내로 대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신과 더불어 싸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주셨고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삼고, 믿음으로 모든 하늘은 우리의 명령에 따르게 되었다. 우리 주위의 사면에는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사신 소유물이 있다. 사면에는 궁핍과 비참한 것과 죄가 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상하고 메마른 심령을 위해 헐벗고 싸늘한 가정을 위해 우리를 떠나 길 잃은 양을 위해 그들을 위해 목자는 피를 흘린다. … 포로 된 자를 풀어 주라. 잃은 자를 하나님께로 데려오라. 생명과 평강의 길을 가르치라.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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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3일 안식일
가장 위대한 교사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세상의 구세주는 외적인 허식이나 세상에 속한 지혜를 과시하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인성을 두르신 하나님 아들의 영광을 볼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있는 그곳을 찾아가셨다. 그는 가장 설득력 있고 단순한 언어로 그들이 이해하기 쉽게 진리를 소개했다. 가장 가난하고 아무리 무식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에 관한 가장 고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말씀의 의미에 관하여 아무도 학문이 많은 박사와 의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무식한 자들이 알지 못하는 이상한 추론을 사용하거나 그들에게 익숙지 않은 말과 학문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당황하게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의 가르침은 가장 명확하고 단순하며 실제적이었다.…
그는 세속적인 명예와 보상을 바라는 마음 없이 생애의 순결과 마음의 겸비로 사람들의 주의를 이끄셨으며 또한 하나님과 그의 사업에 온전히 헌신하도록 이끌었다. 그는 신앙이 짐이 되고 비난거리가 되게 하는 편협하고 교만에 찬 형식주의를 제거하셔야만 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온전하고도 조화로운 구원을 나타내야만 하셨다. 민족적인 배타심의 편협한 경계를 허물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분의 구원은 땅끝까지 미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이 자신이 전한 고귀한 기별을 열렬히 받아들이는 것을 보실 때에 마음으로 기뻐하셨다. 예수께서 하늘을 향해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라고 대답하여 이르셨다.…
최고의 교육과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말하면 ‘무식하고 못 배운’ 자들이라 일컫는 그리스도의 비천한 추종자들의 가르침과 모본을 통해 가장 고귀한 교훈을 배웠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만 더 깊이 관찰해 보면 이 초라한 사람들이, 인간에게서는 배우지 못하는, 거룩하신 교사가 가르치는 최고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음을 깨닫게 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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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4일 일요일
심오한 교훈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요 7:46).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막 12:37)고 기록되었다. 또한 그를 잡으라고 보냄을 받은 관원들은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은…없었나이다.’라고 부르짖었다. 그의 말씀은 평화에 굶주린 자들에게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위안과 힘과 축복을 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얼마나 자비스럽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었던가! 가난한 자와 고난 당하는 자와 억눌린 자들에게 주신 그의 가르침에는 얼마나 동정과 자비가 가득 차 있었던지! …그의 예화는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얻었으므로…그 속에는 기이하고도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공중의 새들과 들의 백합화와 씨 그리고 목자와 양, 이러한 사물을 이용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진리를 설명하셨다. 그리하여 그 후 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 천연계에서 그러한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에 그들은 그의 말씀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던 자들에게 그처럼 위안과 기쁨을 주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를 위한 것이다. 충실한 목자가 그의 양을 알고 돌보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돌보신다. 그는 각 사람을 둘러싸는 시련과 어려움들을 아신다. 이사야는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사 40:11)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양을 곧 아시며 고통을 당하는 무력한 양들은 그의 특별한 돌보심의 대상물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달아 보셨다. 그는 자기와 멍에를 같이하는 모든 영혼을 위하여 멍에의 짐을 짊어지신다. 그는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아신다. 만일 인간의 마음이 서로를 향한 공감이 생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동정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바라보고 살라 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가 너의 고통을 지고 네 슬픔을 거둬 주겠다. 너는 네 목자의 친절하고 동정 어린 사랑 안에서 가장 깊고 풍성한 위로를 누린다. …그분의 인성은 전능하신 분의 숭고한 품성 가운데서도 잊혀지지 아니한다. 그는 당신의 동정과 사랑을 택하신 백성과 초청에 응할 자들에게 부어 주시기를 늘 갈망하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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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5일 월요일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 15). 예수님은 “내 양을” 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나님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아신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양이 되는가? 그분을 받아들이기로 한 선택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들을 택하셨다. 그분은 이끄심에 응답하는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시며 또한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나 강한 반대로 인하여 돌아서는 자들까지도 알고 계시다.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라고 말하고 있다. 그 음성을 듣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바라보는 자들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소유가 되었다. 그러나…그들이 그리스도를 선택한 것은 그분의 이끄심에 대한 반응에서였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그를 사랑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나타났다.…
마치 양 떼가 목자에게 위탁되는 것처럼 온 인류가 예수께 위탁되었다. 이 양들과 어린양들은 목자의 돌봄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 그들은 충성스러운 목자들의 돌봄을 받고 충실한 목자장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목자장의 음성에 순종한다면 그들은 이리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나를 따르느니라”(요 10:27)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양을 몰아세우지 않고 그들을 인도한다. 그분은 전적으로 초청하는 입장을 취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참된 자녀라면 그분의 음성을 들을 뿐 아니라 모든 음성 중에서 그 음성을 구별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감사하며, 모든 오류로부터 예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구별한다. 그 진리는 영혼을 새롭게 하고 기쁨을 충만케 한다.…
요한계시록 7장에 나타난 아름다운 예증은 목양의 상징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계 7:16,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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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6일 화요일
목자의 품으로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참목자는 그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양들, 곧 상하고 절며 나약한 양들을 알고 불쌍히 여겨 도와준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부조 야곱이 그의 양 떼 가운데 나약하며 고통을 당하며 절룩거리는 양을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친밀하게 목자장께서는 그의 양을 알고 계신다. 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는 친히 모든 짐의 무게를 져 보셨다. 아무도 예수님처럼 그 무게를 알지 못하는데, 이는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모든 근심을 짊어지셨고 우리의 모든 슬픔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슬픔의 사람이 되셨으며 질고를 아셨다는 의미이다.…
이 우주 안에서 그대를 염려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와 동정심을 지니고 그대를 바라보신다. 그분은 그대가 상심하고 낙심하였을 때에 그대의 큰 아픔도 함께 보신다. …그대는 위대한 목자의 품 안에서 가장 깊고 부요하며 생생한 동정심을 얻게 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신 분이다.…
그대가 시련을 당하고 시험받을 때에 도움과 힘과 은혜를 찾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남의 마음에 끼친 그대의 감화도 향기를 풍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혼과 그들의 시련과 시험을 아실 뿐 아니라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드는 모든 사정도 알고 계신다. 그대의 큰 위험은 자만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 구하기만 하면 그분의 인내를 우리에게 부여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임재는 그대에게 자제력을 부여해 줄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과 품성을 도야하고 형성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 땅에 남겨 두지 않고 영원토록 유지할 도덕적, 영적 능력을 부여하심으로 그대의 목표와 목적과 능력을 지도하실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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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7일 수요일
하나님의 자녀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취급하였는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 역사는 반복되고 있으며 주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실 때까지 거듭 반복될 것이다. 사탄의 기만은 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 세상을 사람의 거처로 삼으신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바라보시고 기뻐하셨으며 그것이 매우 좋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리스도를 저들의 구주로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될 권세를 얻은 자들 가운데 이루어질 개심과 개혁을 받아들이고 기뻐하실 것이다.…
골로새서 1장은 우리가 누리게 될 특권의 높이를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주께 합당”히 행하는 가운데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 1:9~14).
주님은 죄와 죄의 저주에 휩싸여 슬픔이 가득한 이 땅을 향하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는 기별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임명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을 밟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빛과 생명을 주시고 죄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셨다. 주님은 이생에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을 영접하시러 큰 권세와 영광으로 다시 오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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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8일 목요일
사람이 협력할 때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같이 세상의 구세주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예증으로 보여 주셨다. 인간이 믿음을 실천하면 적당한 때에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자신을 주님의 손안에 두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 안에 보존되고 믿음으로써 그 안에 거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믿음을 활용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 정신과 마음을 끊임없이 훈련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그분의 위대한 사역을 행하신다. 옛 성질을 지닌 자아는 죽고 그리스도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며 그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이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마음과 정신과 지식으로 하나님의 손안에 들린 도구가 되고 더 이상 악을 행치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의를 행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계획에서 사람의 협력이 없이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결코 사람의 의지를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 의지가 온전히 주님께 바쳐지지 아니하는 한, 그가 그 인간 대리자를 통하여 하고자 뜻하신 거룩한 사업을 성취할 수 없다. 예수께서도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위대한 일을 행할 수 없었다고 선언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런 곳에서도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들을 위해 일하기 원하셨지만 불신이라는 장애물에 가로막혀 하실 수 없었다. 토기장이는 그의 손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을 가지고는 귀한 그릇을 빚거나 만들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날마다 굴복하고 복종하여 계속 승리하면서 날마다 그 승리를 새롭게 하는 생애이다. 이것이 그리스도께 이르기까지 자라나고 거룩한 형상을 형성하는 일이다.…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신앙심 그리고 성화는 우리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르러 온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속적으로 신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달라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울부짖어야 한다. 나는 자아를 잊어버리길 원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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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9일 금요일
그분을 모셔 들이겠는가?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장 고귀한 사역은 영혼들을 자기에게 이끄는 일이다. …하늘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대는 그분의 인생 역사 가운데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그의 인성은 신성으로 옷 입었고 그의 온 삶은 지속적인 겸비의 생애였으며 또 겸양(謙讓)의 행실이 끊일 줄을 몰랐으며, 저주로 인하여 만신창이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임재 하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이 세상을 위하여 그는 보좌에서 내려오시고 계속하여 내리막 삶을 택하셨다. 그분은 점점 더 낮은 데 내려오사 종의 형상을 취하셨으며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경멸당하여 생명을 보존하시려 여기저기로 피하셔야 했으며, 결국에는 배반당하고 거절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예수께서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셨는데 죄인인 우리가 자신의 교만한 의지를 겸비케 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스도의 품성을 주야로 연구하라. 이 땅의 모든 수치와 욕설과 학대와 오해를 그가 능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대의 영혼을 위한 그분의 자비로운 동정과 표현할 수도, 비할 수도 없는 그 사랑 때문이었다. 그분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 우리의 죄로 인해 찔리고 상함을 받은 그의 손과 발을 바라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영원으로 들어가는 또 한 날을 지나쳐 버리지 말라. 그대의 연약함과 무가치함과 태만함이 어떠하든지 지금 나아오기를 미루지 말라. …변치 않을 영광의 면류관과 하나님의 생명의 대가인 영생을 베푸는 예수님의 부르심이 나뉘지 않는 애정으로 그분을 섬기도록 그대를 이끄는 충분한 동기가 되지 못해 왔다.…
더 이상 의심스러운 사탄의 편에 있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결정적이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하라. 다시는 그의 은혜를 모독하지 말라. 그는 눈물로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예수께서 그대를 초청하시고 마음 문 앞에서 두드리고 계신다. 그분을 모시어 들이지 않겠는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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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0일 안식일
우리의 조력자 성령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천사들의 봉사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에 능히 역사하심으로써 그를 그리스도께 이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다.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과 더불어 협력할 수 있도록 조력자로서 보내졌으며 또 영혼을 인도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보내진 것이지 결코 순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보내시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감화를 나눠 줄 준비를 갖추어 놓으셨다. 그는 사람에게 이르는 모든 시험을 아시며 또한 각 사람의 역량도 알고 계신다. 그는 사람의 능력을 측량해 보신다. 그리고 현재와 미래를 아시고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감당해야 할 의무를 제시하시며, 하찮고 세속적인 일에 너무나 몰두함으로 영원한 것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라고 강권하신다. 주님께서는 충만한 은혜로써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은사를 부여하고자 하신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위탁한 능력을 그리스도의 봉사 사업을 위하여 쓰이도록 할 것이며 거룩하신 형상에 따라 인간을 빚어 꼴 짓게 하실 것이다.1
성령은 거룩한 모형에 따라 품성을 건설하고 형성하는 일에 우리의 능력이 되신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품성을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시험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을 지닌 자들은 성령의 역사를 받을 것이다. 마음에 믿음을 지닌 영혼은 자라나서 주를 위한 아름다운 성전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도함을 받는다. 인간은 정확히 성령의 가르침에 의존한 만큼 성장한다.2
성령의 감화는 영혼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와 말씀하시는 그분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의 성령께서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가까이에 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모든 이 안에서 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신다. 성령의 내재하심을 깨닫는 이들은 성령의 열매,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이 나타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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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1일 일요일
감추인 보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하나님의 나라가 없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될 것이며…세상에서 아무런 소망도 없을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다. 그리스도는 보화이시며 세상의 쓰레기가 다 청소되는 때에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가치를 능히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감추인 보화와 같았다. 그가 지상에 계실 때에 때때로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비쳐 나왔으며 그의 본래 품성이 나타났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과 하나가 되심을 증거 하셨는데 곧 그리스도께서 침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은 번쩍이는 황금과 같은 비둘기 모양으로 구세주 위에 두루 비쳤으며 하늘에서 한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도하신 그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 자처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가운데 있는 하늘의 보화를 식별하지 못하였다.…
하늘의 통치자는 인성을 쓰셔서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교사이셨으며 인류에게 주어진 영광스러운 보화였다. 그는 사람의 아들들보다 훨씬 아름다웠으나 그의 무한한 영광은 빈곤과 고통이라는 모습 속에 감추어졌다. 신성이 인성을 접촉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영광을 가리셨고, 그리하여 무한히 가치 있는 보화가 인류에게 드러나지 않았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보화는 실제로 두르신 인성 아래에 숨겨졌다. 그리스도는 구할 수 없는 부요함이시기에 그리스도를 발견한 이는 하늘을 발견한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사람, 그분의 비할 수 없는 매력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영원한 보화를 발견하게 된다.1
그리스도께서 이 비유를 든 것은 밭을 살 수 있을 때까지 보화를 감추어 둔 사람을 언급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영적인 것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 그 목적이었다. 사람이 세상의 보화를 얻으려고도 모든 것을 희생하는데, 값을 매길 수 없는 하늘의 보화를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희생해야 할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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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2일 월요일
그대는 가입했는가?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 23:26). 사랑하는 청소년이여, 그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일은 자원하여 주의 군대에 가입하고자 결단하는 것이다. 지혜에 오류가 없으시며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께 그대의 의지와 행동이 지도받을 수 있도록 그분의 손에 그대 자신을 굴복하라.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강탈하는 것이다. 주님은 그대를 필요로 하시고 그대는 주님이 필요하다. 하나님께 그대 자신을 완전히 굴복하는 일에 지체하거나 결정적인 발걸음을 미루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대가 아직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지 않았다면 내가 그대에게 권하노니 지금 드리라. 하나님이 택하시고 선택한 자로서 그대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게 하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우리에게 이르러 오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은사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생명과 건강과 친구와 지성과 행복이 우리 것이 된다. 젊은이와 늙은이들이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으심으로 인해 모든 것이 이르러 왔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소유권을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무자비한 주인의 지배 아래 있었을 때에나 또 흑암의 왕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 때에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피로 속죄의 값을 지불하셨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바 되었으므로 그분의 소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인 그대의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한밤중이며 희망 없는 남녀일 뿐이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라. 그분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분의 증인이 되지 않겠는가? 시간이 없다. 낮 동안 일하라. …그리하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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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3일 화요일
어떠한 사랑을!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4~18).
요한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독생자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라고 부르짖었다. 죄를 지은 인류를 위해 주신 완전한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하나이셨으며,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어 어떤 인간도 그분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는 영광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자신이셨는데 아담의 범죄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보좌에서 기꺼이 내려오셨다. 그리고 모욕과 조롱과 고통, 아픔과 죽음을 받아들이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불변의 율법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시고 당신의 죽으심과 의로 말미암아 범죄자들에게 피할 길을 마련하시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요 후사로 참여시키기 위해 자신을 주셨다.
아무리 재능이 많고 학식이 많으며 높은 명예를 소유한 자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비천한 일로 생각하지 말라. …모든 사람은 경의와 감사로써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며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라고 놀람으로써 부르짖어야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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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4일 수요일
그와 같을 줄 아는 것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자녀의 이름을 아신다. 또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를 것이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그의 형상대로 변함을 받을 것이며 그의 성질을 닮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추종자들의 생애에서 나타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점점 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하게 된다. 그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볼수록 다시 보고자 열망하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많은 빛과 사랑과 영광을 보면 볼수록 그 빛은 점점 증가된다.…
영적 눈이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이다. 이성(理性)의 시야로는 그 영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주께서 영적 진리의 빛을 주실 때까지 그 영광은 감추어져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과 오묘는 주께서 그 영광의 의미를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시기까지 그 영광의 말할 수 없는 광채로써 가리워져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께로부터 이르는 거룩한 빛을 포착한다. 우리는 그의 순결과 겸비와 극기 그리고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그의 위대한 희생 가운데서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를 명상하는 것은 사람으로 자신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하도록 인도한다.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그로 사랑으로써 행케 하며 또한 마음을 정결케 하는 그러한 믿음을 그의 마음속에 불어넣는다.…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바라보는 영혼들에게는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도 귀한 분이다. 또한 믿음을 지닌 영혼은 예수님에게 오빌의 정금보다 더욱 귀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못 박히셨던 당신의 손을 바라보시며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인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충만한 약속으로 된 성벽으로 둘려 있다.
주님은 권세와 큰 영광으로 오신다. 그리스도를 저들의 피난처로 삼은 이들은 그분의 형상을 반사하고 그분과 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분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분 앞에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엡 5:27) 서게 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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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5일 목요일
위대한 교사 아래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마음속에 참된 회개가 일어나면 그것은 품성의 변화로 나타나게 되는데, 대개 회개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되는 까닭이다. 더 이상 교만이 마음에 자리 잡지 아니하며 죄는 가증하게 보인다. 회개한 영혼은 그의 도덕적인 감각을 무디게 하는 것들을 싫어한다. 그는 생명이시요 영광의 주님이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것들을 미워한다. 진정으로 회개한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 가운데 자라날 것이며 그들 자신의 약점을 똑똑히 볼 것이며 그들의 본성이 깊이 타락하였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들은 죄의 영향력을 이해하며 옛 습관의 권세를 알게 된다. …그들은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없이는 어떤 것이라도 행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음을 인식하여 예수께 “나와 무능한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다만 당신의 십자가에 매달리는 일 말고는 내 손에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죄인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볼 때에 그는 세상 죄를 제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준비하셨는지 더 분명하게 보게 된다. 그는 모든 투쟁에 대항하기 충분하고 적절한 은혜의 영을 깨닫게 된다. 세상 죄를 처리하기 위한 오묘하신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지런한 일꾼이며 게으른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집안에는 게으름뱅이가 없다. 믿음의 모든 식구는 각자가 맡은 임무가 있다. …그리스도의 학교 학생은 간증하는 법, 기도하는 법, 주인의 산 증인이 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부지런하고 꾸준한 학생이 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지혜와 능력과 경험이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의지와 모든 관심을 위대하신 교사의 돌보심에 맡기게 될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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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6일 금요일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벧전 1:18, 19).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 20). 그대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의 피로 속죄한 것을 그분께 다시 돌리겠는가? 그대는 그대의 지성적인 능력을 그분께 바치겠는가? 그대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능력을 구별하겠는가? 그러한 능력은 그분의 것이다. 그분은 값으로 그것들을 사셨다. 그대는 자신의 양심을 계발하여 선한 양심에 이르게 하고 또 신실한 파수꾼을 세워 영혼의 최고 관심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가겠는가? 그리스도는 그대의 애정을 위해 값을 치르셨다. 그대는 그것을 소홀히 여기며 왜곡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그 애정을 아무 가치 없는 대상에 쏟고 인간에게 집중시켜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경배 대상으로 삼겠는가? 아니면 그대의 애정을 정결하고 고상하게 연단하여서 창조주와 구속주에게 붙들어 매겠는가?…
하나님은 갈라진 두 마음을 차지하거나 분리된 두 보좌에서 통치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의 애정을 붙잡아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탈시키게 하는 모든 적수(敵手)는 다 물리쳐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셨으며 우리는 그의 상속 재산이다. 그리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영예를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날마다 하나님과 더불어 동행하라. 우리가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도움을 붙잡음으로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말씀하신다.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셨고 모든 이의 마음 가운데 보좌를 요구하신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분께 복속시켜야 하며 타고난 습성과 기호도 영혼의 더 귀한 필요에 적합하게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없다. 우리가 자신의 지도를 따르면 안전할 수 없다.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고 성화시키셔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에 절반의 봉사란 없어야 한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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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7일 안식일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다. 하나님 아들의 인성은 무서운 죄의 의식감에서 비틀거렸으며 마침내 그의 창백하고 떨리는 입술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타락한 인류의 구원이 성취될 만한 다른 방법이 없다면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는 고민의 부르짖음을 터뜨리셨다.
인간의 대속주이며 중보자이신 그에게 보응의 공의를 가한 권세는 이 죄악 세상을 덮칠 뻔한 무서운 진노의 무게 아래서 고난 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붙들어 일으킨 바로 그 권세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선언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회개하지 않은 죄인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수중에서 타락하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이것은 고대 세상을 홍수로써 멸한 역사와 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소돔의 거민을 멸한 기록을 통하여 증명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고민 중에 이 죄악 세상을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짊어지신 그때처럼 널리 증거 된 때는 결코 없었다.…
인간은 죄를 짊어지는 자가 되어 보지 못하였으므로 구주께서 짊어지신 죄의 저주의 공포를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압도적인 기세로 구주에게 임할 때에 그분이 당한 슬픔은 어떤 다른 슬픔과 비교할 수가 없다. 인간의 성정은 기껏해야 제한된 시험과 시련을 견디는 데 불과하다. 유한한 존재는 단지 제한된 만큼만 견딜 수 있기에 인간 본성은 굴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본성은 더 큰 고통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분은 거룩한 분 안에 거하셨으므로, 타락한 세상 죄악의 결과를 견뎌 낼 고통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넓고도 깊은 고통은 죄의 본질과 죄에 계속 머무르는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이해를 더욱 깊게 해 주었다. 죄의 값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생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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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8일 일요일
갈바리의 십자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3:33).
갈바리의 십자가는 우리가 지금 왜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하며 또한 우리가 모든 일에 그분을 처음과 나중으로 여겨야 할 이유를 제시하며 힘 있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십자가 아래에서 겸허하게 회개하는 자세를 취함이 마땅하다. 우리는 갈바리 산 위로 올라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또 고뇌하시는 구주를 바라보며, 의로운 자가 의롭지 않은 자를 위하여 돌아가신 그 하나님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의 교훈을 배우게 된다. 말씀 한마디로 큰 무리의 천사를 모아 자기를 돕게 할 수 있는 그분께서 조롱과 희롱, 모욕과 증오의 대상물이 되신 모습을 주목하라. 그는 자신을 죄의 희생물로 주셨다. 그는 모욕을 받으셨으나 대꾸하지 않으셨고 그가 거짓으로 송사를 당하였을 때에 입을 열지 않으셨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살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는 그들을 위하여 죽어 가는 중이었다. 그는 그들 각자를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고 계셨다. 그는 그처럼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산 사람이 잃어버린 바 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는 자신을 내주사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채찍을 맞으셨다. 불평하지 아니하는 이 희생자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의 보좌는 영원 전부터이며 그의 왕국은 다함이 없다. …보라,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대를 위하여 고난 당하신 거룩한 희생을 바라보라.…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위하여 버림 당하고 멸시받으셨다. 그대가 믿음의 눈으로 십자가의 모든 장면과 그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본다면, 그리스도께 그대의 비애와 그대가 받은 시련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욕하고 죽이는 자들을 향하여 창백하고 떨리는 입술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시는데도 그대가 원수에 대해 복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죄의 속박과 타락에서 우리를 구하여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려 자신을 굴복시키신 하나님 아들의 깊은 겸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바로 지금 우리의 품성의 두루마기를 어린양의 보혈로 희게 빠는 일에 헌신해야 할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험의 시기에 살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위대한 순백의 보좌 곁에 흰옷 입은 무리로 서게 될 것이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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